2012년 8월 20일 월요일

나비의 결혼식

얼마전 기매나씨의 디자인 회사 12번가 디자인에 의뢰가 들어왔다. 야호. 다름 아닌 결혼식 초대장과 결혼식 날짜를 알리는 save the date 카드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최근에 아기 혹은 결혼식 소식이 이곳 저곳에서 많이 들리고 있길래 누구 한명 의뢰를 하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를 하고 있던 중이어서 더욱 기뻤다.

카드는 특별하다. 특별하게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카드는 더더욱 특별하다. 중학교 때 제일 친한 친구였던 ㅎ양에게 줄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든 기억이 난다. 천사의 날개를 반짝거리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반짝이 스티커를 깨알같이 오리던 그 시간들. 그 뒤로는 카드를 대신 해 다이어리 꾸미기가 한 바탕 고등학교 시절을 휩쓸고 지나갔다. 태지오빠의 사진과 친구를 향한 나의 유치찬란한 당부(?)의 글이 새겨진 다이어리 속지를 완성하던 순간은 친구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나의 쾌락을 위한 활동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카드들은 내 기억 속에도 아주 오랫동안 남는다.

결혼을 하려는 이 두 남녀에게 무엇을 좋아하냐 물어보니, 한 분은 헬로 키티라고 했고 한 분은 스타 워즈라고 했다. 정말 찰떡 궁합이 아닐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결혼식의 테마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나비'라고 했다. 나비. 나비. 나비.. 흠...
이렇듯 디자이너에게는 온갖 시련이 다가온다. 나와 취향이 맞지 않지만 고객의 취향을 최대한 아름답게 꾸며주어야 하는 사명감이 있는 것이다.

나비를 특별하게 만들어 보자.
Save the Date 카드가 사람들에게 우리 결혼하겠다 하면서 알리는 카드라면 초대장은 실제로 올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초대를 하는 카드이다.  그래서 Save the Date 카드엔 나비가 되기 전 번데기가, 결혼식 초대장에는 나비가 들어가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맞아 떨어지고, 여기저기 남발하는 것 보다 훨씬 나비를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냉면만 많이 먹는 것 보다 갈비로 배를 채우고 마지막을 냉면으로 장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름다운 번데기를 한 마리 찾아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서식하는 나비의 번데기로 그 외관이 마치 예쁜 소라 껍질처럼 반질반질 하며 보라빛을 낸다. 보라색을 또한 테마색으로 고른 고객의 취향과도 맞아 떨어지고, 아름다운 나비가 탄생할 것 같은 기대를 하게 해 준다는 이유로 선택했다. 번데기 안에는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며 한 마리의 나비로 태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고, 결혼식 날짜와 시간은 스타워즈와 공상과학을 좋아하시는 고객님을 위해 특별히 메트릭스 스타일로 적었다.


고객님께서 흡족 해 하시는 결과물이 나왔다. 그리고
Yes라는 대답을 들을 때의 기분은 정말 나이롱 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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