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8일 목요일

나의 아이의 미래

아리의 고모가 디렉트를 하는 필름에 아리가 출연을 하게되었다. 아리의 출연료로 125불을 준다길래 아이의 계좌를 만들었다. 세살부터 돈을 버는 아리가 자랑스럽다.

메트릭스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내 아이가 커서 무엇을 해서 행복할까? 아이가 좋다는 일을 시켜야지, 아이가 좋아하는일이 돈도 많이 버는일이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좋아하는일을 해서 돈까지 잘번다면 정말 바랄게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있지는 않은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인테리어를 공부했지만 회사에서 하는 잦은 야근과 적은 연봉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던것 처럼..

'돈'이란 상스러운 것이라 입에 올리기 뭣하고 돈보다는 행복이 중요하다 라고 생각하는 문화와 세대에서 자라서 그런지 고정관념을 깨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니면 여지껏 나만 몰랐나...... ??
어쨌든 요즘와서 드는 생각은, 돈이란 어쩔수 없이 사는데 필요한것인데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계산하고 더 벌기위해서 집착하는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생각을 안하고 살았던 나의 세월이 아깝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내 아이만큼은,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게 해주고싶다. 돈과 행복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목표인즉슨 아리가 대학교가기 전에 아리가 번돈으로 집을 한채 사는것. 작은 집이더라도 세를 줘서 한달에 얼마 용돈이 나온다면 아리가 일을 거의 하지않고도 돈을 벌수 있는것이 아닌가. 그런 상황이 된다면 아리가 하고싶은일 막말로 유명하지 않고서야 돈 잘 못버는 아티스트, 댄서, 디자이너 이런것 맘대로 할수 있을것이 아닌가?

내 아이들의 미래엔 어떤 가치관과 물질이 세상을 뒤흔들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부모로서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해 줄수있는 일은 아이가 좋아하는 일이 뭐던지간에 그 일을 이루기 위한 경제적 기초를 닦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는 나에세 태어나게 해달라 부탁하지 않았다. 내가 나의 흔적을 남기려고 만들었을뿐. 아이가 독립하기 전까지 책임을 지는게 당연하고 그 일을 나와 남편이 잘 해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30년뒤, 내가 내 자식에게 키워준 댓가로 나를 돌봐달라 부탁하지 않는 그런 상황이 되도록 우리는 요즘 열심히 일하고있다.




2017년 9월 15일 금요일

시작이 PIZZA

뉴욕에 십년정도 살다보면 내 자신이 피자 전문가가 되었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치게 된다.  해장으로 피자를 먹는 남편을 처음 봤을땐 아, 얘가 피자 좀 먹던 애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그 뒤로 우리는 각종 피자 맛집을 돌아다니며 심지어는 피자를 만드는 수업에 참여하면서 까지 피자에 대한 열정을 불 태우곤 했었다.

요즘 피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전과는 많이 다르다.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말이다. 물론 아직도 코스코에 갔다가 에이전트의 유혹에 못이겨 시켜먹을때도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 15불씩 내면서 키즈카페같은 곳에 가지 않고도 아이가 집중할 수 있고,
  • 같이 만들면서 얘기도 할 수 있고, 
  • 내가 먹는것에 뭐가 들어가는가 교육상 좋은 것 같기도 하고,
  • 내가 먹는것을 직접 만든다는 성취감(물론 밀가루까지 직접 만들생각은 없지만)에
  • 나 자신을 위해 뭔가를 마스터 하겠다는 결심
까지 더하면 피자 한판에 덤으로 얻는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피자 라지 한판은 피자리아에서 18불정도. 그런데 직접 만드는데 드는 돈은 한판에 2.50불.
비빔밥 한그릇을 3.50불에 만들어 12불에 팔아야 되는 한국음식에 비하면 엄청나게 남는 장사가 아닌가!!!!!!!!!!!!!!!!!!!!!!!!!!
암튼 잽싸게 은퇴를 하기로 결심 했거니와 피자를 좋아하는 우리 가정의 특성상 피자는 완벽한 저녁메뉴가 아닐수가 없겠다. 게다가 집에서 만들면 쓸데없는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아도 되니 애기들을 위해서 안심!

처음엔 이것저것 고급스럽고 희귀한 재료들로 장식을 해서 남들한테 멋질대로 멋진 피자를 보여주며 잘난척을 하는게 취미 였다면 지금은 제일 간단하면서 클라식한 피자를 만들어 몰래 맛있게 먹는걸로 바뀌었다. 오늘은 oregano 잎사귀들을 갈아서 말려서 가루를 직접 만드는 난리를 떨었는데 별다른건 모르겠고, 다음번엔 모짜렐라를 직접 만들어 볼까한다.

오늘은 프랭크 피넬로와 만드는 뉴욕스타일 피자에 도전했다. 프랭크 피넬로 피자소스는 내가 기존에 만들던 것 보다 훨씬 간단한데 먹어보니 과연  less is more.
생각보다 쉽다는.
https://youtu.be/whnvQBhXh3A





2017년 9월 8일 금요일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이제서 돌아왔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너무나 기다렸네

컴백을 하면서 이노래가 생각났는데 마치 내얘기같아서 안쓰고 지나가면 섭섭할까봐.

몇년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의 한국어가 현저히 나빠졌다는 것, 영어가 더이상 팍팍 늘지 않는다는 것, 사람을 두명이나 생산(?)했다는 것, 똥배가 늘었다는것. 변하지 않은게 있다면 북한 이자쉭들이 아직도 미쳐 날뛰며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 정도.. 개인 신상이 변하면서 원하는것이나 삶을 대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음을 옛날 포스트를 읽으며 느낀다.

몇년전 남편이 초록색인지 빨간색인지 모를 알약을 먹고 다시 태어나 메트릭스에서 빠져나온뒤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하얀 토끼를 따라 가라고... 
!!!!! 
목표가 생겼다.
어두절미하고 말하자면 "빨리 돈벌어 잽싸게 은퇴"하는것. 너 일도 안하고 무슨 삶이 그러냐 그래도 칠십까지는 일해야지 70 is new 40! 뭐 이런소리 많이 들었는데 정말이지. 일을 안하면 좋을것 같다. 중요한것은 남편도 같이!! 누군 일하고 누군 놀면 재미없지. 아무때나 먹고 자고싶을때 자고, 책읽고, 애들 걸어서 학교 데려다 주고, 남편이랑 커피마시면서 길거리에서 시시덕거리고 싶다. 수요일 오전에 오래 못본 친구 회사에 찾아가 같이 점심도 먹고, 뮤지엄에도 들렀다가 느긋하게 집에 돌아오고싶다. 아무거나 집어 입고 동네 어슬렁거리면서 도서관에 갔다가 애들 학교에서 픽업하고, 같이 그림그리고 운동하고, 뒷마당에서 키운 야채로 저녁을 세시간동안 해먹고, 와인 마시면서 내일 일나갈 걱정 안하면 좋을것 같다. 여행을 세달정도 원할때 원하는 곳으로 다녀오면 좋을것 같다. 바로 이것이 남편이 끓어들인 우리의 계획인데. 이거 이렇게 발설해도 되나. 남편의 한글이 서투르니 괜찮다고 치고.

매일 곳곳에서 에이전트들이 우리의 계획을 망치려고 필사적이지만 나 미스터 앤덜슨과 남편 모피어스는 결국엔 해내고야 만다는 스토리.















2012년 9월 23일 일요일

M for Motorcycle

일과가 끝나면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어제와 똑같은 메뉴로 밥을 먹고, 어쩌다가 운동 좀 할 마음이 생기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피곤해서 책 한 권 끝낼 수 없는 일주일을 그냥 그렇게 보낸다. 금요일 밤엔 주로 네트워킹을 위한 파티나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힘든 나의 몸에 필요하지 않은 알코올을 부어주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재생하는데 토요일 하루를 꼬박 다 보내야 한다. 나이와 재생시간이 절대로 비례한다는 거. 맞는 말이다. 다행이 행사가 없는 토요일이라면 느지막히라도 나는 왜 아름다운 토요일을 낭비하는가 라며 꼼지락거리기 마련이지만. 일주일 동안 밀린 청소, 빨래 등등의 집안일을 챙기고 나면 어느덧 해는 지고, 일요일. 가까운 친구와 만나서 똑같은 이야기를 한없이 되풀이 하고 우리 뭐 좀 하자는 말만 하고. 그리고 또 다시 월요일.

이렇게 평범하고 편안한 인생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지나면 지겨워 진다. 매일 매일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듯한 스팩태클한 인생은 아니더라도  일 말고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취미 없을까. 뭐라도 좀 해보고 싶은데 대체! 무엇을. 해야. 엄청나게. 신나는. 주말을.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소문이 문제가 아니라, 내 인생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예수에게 부인이 있었다는 파피루스까지 발견 된 마당에, What the hell I am doing now?!
라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시다면 추천한다. 오토바이. 두둥.


 A군이 일년 전 오토바이를 구입, 그 매력에 흠뻑 빠져서 요즘도 나를 뒤에 태워 주고는 하는 바람에 자전거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커다란 장난감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바람을 가르며 달려갈 때에 피부로 느껴지는  가벼움, 차 속에서는 미처 몰랐던 길과 나무의 냄새. 가장 중요한 것만 챙겨야 탈 수 있는 단순한 철학. 그리고 기름값의 절약. 모든면에서 자전거와 비슷하지만 모터가 달려 있어서 패달을 더 이상 굴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 amazing한 이륜차. 오토바이. 두두둥.

미국은 차의 나라. 땅이 넓어 차가 없이는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그런 곳이니(뉴욕 빼고) 이곳 고속도로에선 오토바이가 허용이 된다. 그래서 뉴저지엔 오토바이 코스르 수강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내가 역시나 부동산 투자자의 마음으로 선별한 이 학원은 가혹한 훈련으로 라이더의  안전을 200% 증강시켜 준다는 The Riding Academy NJ(http://www.theridingacademyofnj.com/), Paterson New Jersey에 위치해 있어서 우리집에선 차로 30분 거리. 이 곳은 The Brief Wondrous Life of Oscar Wao(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 나오는 바로 그 동네이다. 히스패닉계 주민들이 집 앞 베란다에 나와서 런닝바람으로 담배를 태우는 사이 주인 없는 개들이 어슬렁 거리고, 낙엽 태우는 냄새가 나는 어떤 공장들 사이에 자리잡은 이 학원은 이층 짜리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건물, 이른바 Big Boys Toy Box에서 수강생들을 교육한다.


토이 박스 건물엔 온갖 빈티지 자동차와 오토바이, 심지어 1955년 코카콜라 자판기까지 갖추고 이들을 고쳐서 판매하는 헐크호건 비슷하게 생긴 주인 할아버지가 계신다. 나와 같은 반 학생들은 헐크호건과 함께 할리 데이비슨(오토바이의 종류) 앞에 서서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놈이라우. 고속도로에서 서른 다섯시간 쯤은 거뜬하지 않겠어. 난 그저 물과 햇볕의 힘으로 이 나라를 가로 질렀지. 음허허허허" 라는 대화를 나누어도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한 WWE 동창생들이다. 어떤 여자 한 분도 포함해서. 그런데 왠  동양여자가 오토바이를 배우겠다고 오니 신기했는지 클라스 대표로 오토바이에 앉아보라고도 하고, 이것 저것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코스는 주말 이틀에 걸쳐 아침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혹독하게 진행된다. 오전엔 오토바이에 관한 각종 안전, 교통정보를 배우고 오후엔 근처 커다란 주차장에 만들어진 주행 코스에 가서 훈련을 받는다. 둘째 날 교육 끝엔 필기 시험과 주행시험을 보는데 피곤해서 졸았다거나 시동을 꺼뜨리거나 했다면 합격 할 수 없을 만큼 간단하지 않은 코스이다. "I couldn't stand sitting on the couch and doing nothing", 라며 오토바이에 대한 무한 열정을 나타낸 우리반은 주말 전체를 포기한 사람들이모인 만큼 필기, 실기 시험 모두 열심히다. 열 두대의 오토바이는 주차장에서 열심히 S와 동그라미 그리는 연습하며 멋진 주말을 보낸다.


헐커호건의 친구들은 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행여나 내가 시험에서 실수 할까봐 마음을 졸이며 응원을 해 주었고 성공적으로 끝내자 모두 예쁜 치어리더들 같이 펄쩍펄쩍 뛰며 하이파이브로 축하 해 주었다.




A군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자신의 오토바이를 기꺼이 타게 해 주었고 나는 멋질대로 멋진 주말을 보냈다. 오토바이, 구입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면허증을 따는 과정은 손에 꼽을 만큼 신선한 경험이었고, 면허증에 오토바이를 굴릴 수 있다는 글자 M 이 새겨지는 순간의 기분은 정말이지 꿀맛이다. 물론 세시간 기다려서 재발급 된 면허증의 새 사진 역시 말할 것도 없이 웃기지만. 

다른 저력인사의 오토바이 사랑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Icecreamarsenal.com
Song of the Sausage Creature 포스트를 추천한다.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떠나기 전에 면허증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우-우-우- 우우우우우-
몇년 전의 한 광고가 떠오른다. 사실 뉴욕 시내에서는 굳이 면허증이 필요없다. 지난 포스트 "자전거, 차가운 도시인의 필수 아이템"을 보면 자전거만으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그렇지만, 면허증이 있는데 운전을 안하는 것과 면허증이 없기 때문에 운전을 못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나도 좀 떠났으면 좋겠는데 면허증이 없다면? 친구랑 같이 가지 않고 혼자 가고 싶다면? 둘이 떠났는데 옆사람이 취했다면? 놀러 나갈 때 마다 작은 면허증 대신에 크나큰 여권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녀야 한다면?

미국에서 면허증은 운전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신분증의 개념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올 가을이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필기 시험은 이미 봐 놓은 상태여서 면허증 있는 사람이 동승할 경우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혼자서 운전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마다 아주 곤란했다. 어느 일반면허증을 가진 위인이 임시면허인과 어울리고 싶겠는가. 일반면허를 따기 위해선 주행 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역시나 일반면허가 있는 사람과 동승한 채 자신의 차를 가지고 시험장으로 가야하므로 일반면허증과 멀쩡한 차를 소유한 분을 섭외하여 시험 날짜를 잡는것이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첫번 째 시험은 미국내 범죄율 상위권을 자랑하는 Newark이라는 곳에서였다. 아닌게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불만과 증오가 가득한 듯한 인상의 시험관들은 그런 동네에서 일하는 것이 역겹다는 듯한 태도로 나를 불쾌히 맞아 주었고, 나는 마치 여덟시간 전에 방구석에 싸 놓은, 기억도 나지 않는 똥에 대해서 이틀 뒤에 엄청 혼나는 강아지가 된 듯한 기분으로 시험에 임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 시험관은 나를 불공평하게 시험에서 떨어뜨렸다. 한 성격하는 일반면허인인 내 친구조차 불공평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항의 해 봤자 남는게 없을 거라며 나를 위로했다.  시험관은 나와 시험장에 함께 가 준 너그러울 대로 너그러운 일반면허인 내 친구에게까지 무개념의 극치를 보여주며 나를 긴장시켰고, 나에게는 분명하지 않은 가이드를 하여 코스를 이탈 하도록 했다. 더럽고 치사한 이 세상. 언제부터 자동차 타고 다녔다고 그런 가짜 권력으로 나의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다니.

두번 째 시험은 특별히 가격이 오를 부동산을 고르는 투자자의 마음으로 선별한 Lodi라는 곳에서 보았다. 인구, 인종, 수입, 범죄율등을 고려 했을 때 차별을 당하지 않고 시험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얏바리! 친절한 시험관, 드넓고 쾌적한 시험장, 짧은 대기자 명단, 바삭바삭한 가을의 날씨까지 완벽한 환경속에서 나는 아주 손쉽게 시험을 통과했고 그 자리에서 면허증을 발급 받았다. 이 날 흔쾌히 함께 가 주신 일반면허인은 바로 닥터 손. 경쾌한 성격의 닥터 손은 침착하고 곱게 시험을 마무리 해 준 젊은 시험관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우리는 휘파람을 불며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 면허증 땄다고.



한국이나 미국이나 면허증 사진은 정말 못 봐 주겠다.
기념으로 다음주 중에 보스톤으로 하루 드라이브를 갔다 올까 생각 중이다. Oh YEAH.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and a New desk

PC방에서 카트라이더 혹은 디아블로 비슷한 게임을 해 보았다면 컴퓨터가 놓일 책상과 책상의 위치, 각 팀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최근 A군과 시작한 디아블로를 나란히 앉아서 열심히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디자인 의뢰를 문제 없이 소화하기 위한 데스크탑을 셋업 할 Work station이 필요했다. 한 번 만들어 볼까나. 그렇지만 지난번 벤치, 의자 샌딩의 악몽이 잊.잊.잊혀지지 않은 관계로 결정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여기 저기 알아보기는 했지만 사고 싶은 책상은 늘 비싸고, 구매 가능한 책상은 꼭 어디 한 군데가 맘에 안들기 마련이다.




역시나 이웃에 위치한 홈디포에 들러서 나무 구경을 잠시 한 뒤, 포플러 나무를 골랐다. 홈디포에 있는 가장 fancy한 나무가 포플러와 red oak이고 그 둘을 제외하면 단 한 종류 파인 뿐이다. 파인은 가격이 싸고 작업 하기가 용이한 대신에 나무가 물러서 웬만큼 두껍지 않은 이상 금방 휜다. 게다가 두꺼운 나무는 건축용이라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팔기 때문에 샌딩하는데 또 100년 정도를 까먹어야 한다는 두려움 아니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가격이 좀 비싸지만 오랫동안 이 책상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에 좀 더 단단하고 깔끔하게 샌딩이 되어 있는 포플러 낙찰.


 


집에 있는 가구들이 붉은 계열이 많아서 같은 분위기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기다란 베이스 위에 짧은 나무 토막들을 나열하고 세 가지의 스테인으로 패턴을 만들어 줄 작정!







꼼꼼하게 떡칠하지 않고 여러겹, 색을 섞기도 하면서 바르다 보면 나무가 점점 어두워지고 그 무게를 더하게 되는것이 꼭 사람같다. 칠이 마르면 두 다리와 몸을 잘 붙여주면 된다.













한 식구가 늘었다.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새 집, 새 계절

Long time no see!
드디어 이사가 끝났다. 짐 정리, 쓰레기 분리 수거, 필요한 물건 사기 등등을 마치는 동안 몇 번의 비가 내리고 가을이 되었다. 얼마 가지 않을 짧은 이 가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온도, 습도 모든게 완벽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하다. 새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는 것은 굉장한 기분의 전환이 된다.




가장 먼저 우리집의 자랑 창문! 남쪽으로 난 커다란 아치형의 창이 집 전체에 빛을 들여오고 이 집의 운치를 책임지는 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 앉아 있으면 등을 따끈따끈하게 데워 준다.


우리집의 명물 식탁! 창가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아서 그런지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 지난 번 집에서 현관 앞 열쇠 등을 넣는 용도로 쓰이던 콘솔이 와인 글라스나 주류, 카드 등의 보관용으로 둔갑, 식탁과 함께 쥐드래곤과 탑에 버금가는 환상의 콤비로 등극했다. 


공짜로 얻어온 바람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장. 지난 번 집에서는 그럭저럭 잘 사용했지만 개인적으로 쓸데 없는 물건들 진열하는 게 싫어서 제거 1순위에 올랐다. 책장 안의 모든 잡동사니들이 갈 곳을 찾게 되면 넌 이제 안녕!



소파가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집에 비해 덩치가 컸던 소파가 이 집에 오니 맞춰 입은 양복처럼 아주 아주 잘 어울린다. Good job, couch!


지난 번 플랜에서 보았듯이 침실은 들어오자 마자 바로 오른쪽으로 있다. 벽으로 나누어 져 있지 않아서 이불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하는게 관건!


입구에서 보이는 복도를 거쳐 보이는 거실. 복도의 왼쪽으로는 화장실, 오른쪽으로는 부엌이 자리잡고 있다.


부엌 바로 옆의 빈 공간엔 나의 애물단지인 파랑색 의자가 우아하게 자리 잡았다. 그 동안 즐길 수 없었던 의자의 직각이 확연하게 살아났다. 


창문으로 내다 보면 보이는 길 건너의 레스토랑, Hamilton Inn. 가깝다 보니 주변의 친구들과 자주 찾게 된다. 생굴과 기네스는 우리의 단골 메뉴. 미식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바에서 드래프트를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참, 옥상이 있었지. 옥상은 우리의 가을을 살 찌워 줄 키 포인트임이 분명하다. 건물에 사는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이 귀여운 옥상은 맨하탄, 자유의 여신상, Freedom tower에 이르는 뷰를 자랑하며 또한 고기를 구워 먹으며 햇볕을 즐길 수 있다. 이미 두 팀이나 와서 한바탕 구워 먹고 놀았다.



이것은 퍼온 사진으로 건물의 외관을 보여 준다. 창문의 모양을 보면 우리집이 4층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 할 수 있겠다. 



그 외에도 해밀튼 공원이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산책하며 거닐기에 딱이다.
올 가을은 어떤 신나는 일들이 펼쳐질지 심히 기대가 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