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3일 일요일

M for Motorcycle

일과가 끝나면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어제와 똑같은 메뉴로 밥을 먹고, 어쩌다가 운동 좀 할 마음이 생기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피곤해서 책 한 권 끝낼 수 없는 일주일을 그냥 그렇게 보낸다. 금요일 밤엔 주로 네트워킹을 위한 파티나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힘든 나의 몸에 필요하지 않은 알코올을 부어주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재생하는데 토요일 하루를 꼬박 다 보내야 한다. 나이와 재생시간이 절대로 비례한다는 거. 맞는 말이다. 다행이 행사가 없는 토요일이라면 느지막히라도 나는 왜 아름다운 토요일을 낭비하는가 라며 꼼지락거리기 마련이지만. 일주일 동안 밀린 청소, 빨래 등등의 집안일을 챙기고 나면 어느덧 해는 지고, 일요일. 가까운 친구와 만나서 똑같은 이야기를 한없이 되풀이 하고 우리 뭐 좀 하자는 말만 하고. 그리고 또 다시 월요일.

이렇게 평범하고 편안한 인생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지나면 지겨워 진다. 매일 매일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듯한 스팩태클한 인생은 아니더라도  일 말고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취미 없을까. 뭐라도 좀 해보고 싶은데 대체! 무엇을. 해야. 엄청나게. 신나는. 주말을.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소문이 문제가 아니라, 내 인생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예수에게 부인이 있었다는 파피루스까지 발견 된 마당에, What the hell I am doing now?!
라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시다면 추천한다. 오토바이. 두둥.


 A군이 일년 전 오토바이를 구입, 그 매력에 흠뻑 빠져서 요즘도 나를 뒤에 태워 주고는 하는 바람에 자전거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커다란 장난감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바람을 가르며 달려갈 때에 피부로 느껴지는  가벼움, 차 속에서는 미처 몰랐던 길과 나무의 냄새. 가장 중요한 것만 챙겨야 탈 수 있는 단순한 철학. 그리고 기름값의 절약. 모든면에서 자전거와 비슷하지만 모터가 달려 있어서 패달을 더 이상 굴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 amazing한 이륜차. 오토바이. 두두둥.

미국은 차의 나라. 땅이 넓어 차가 없이는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그런 곳이니(뉴욕 빼고) 이곳 고속도로에선 오토바이가 허용이 된다. 그래서 뉴저지엔 오토바이 코스르 수강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내가 역시나 부동산 투자자의 마음으로 선별한 이 학원은 가혹한 훈련으로 라이더의  안전을 200% 증강시켜 준다는 The Riding Academy NJ(http://www.theridingacademyofnj.com/), Paterson New Jersey에 위치해 있어서 우리집에선 차로 30분 거리. 이 곳은 The Brief Wondrous Life of Oscar Wao(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 나오는 바로 그 동네이다. 히스패닉계 주민들이 집 앞 베란다에 나와서 런닝바람으로 담배를 태우는 사이 주인 없는 개들이 어슬렁 거리고, 낙엽 태우는 냄새가 나는 어떤 공장들 사이에 자리잡은 이 학원은 이층 짜리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건물, 이른바 Big Boys Toy Box에서 수강생들을 교육한다.


토이 박스 건물엔 온갖 빈티지 자동차와 오토바이, 심지어 1955년 코카콜라 자판기까지 갖추고 이들을 고쳐서 판매하는 헐크호건 비슷하게 생긴 주인 할아버지가 계신다. 나와 같은 반 학생들은 헐크호건과 함께 할리 데이비슨(오토바이의 종류) 앞에 서서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놈이라우. 고속도로에서 서른 다섯시간 쯤은 거뜬하지 않겠어. 난 그저 물과 햇볕의 힘으로 이 나라를 가로 질렀지. 음허허허허" 라는 대화를 나누어도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한 WWE 동창생들이다. 어떤 여자 한 분도 포함해서. 그런데 왠  동양여자가 오토바이를 배우겠다고 오니 신기했는지 클라스 대표로 오토바이에 앉아보라고도 하고, 이것 저것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코스는 주말 이틀에 걸쳐 아침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혹독하게 진행된다. 오전엔 오토바이에 관한 각종 안전, 교통정보를 배우고 오후엔 근처 커다란 주차장에 만들어진 주행 코스에 가서 훈련을 받는다. 둘째 날 교육 끝엔 필기 시험과 주행시험을 보는데 피곤해서 졸았다거나 시동을 꺼뜨리거나 했다면 합격 할 수 없을 만큼 간단하지 않은 코스이다. "I couldn't stand sitting on the couch and doing nothing", 라며 오토바이에 대한 무한 열정을 나타낸 우리반은 주말 전체를 포기한 사람들이모인 만큼 필기, 실기 시험 모두 열심히다. 열 두대의 오토바이는 주차장에서 열심히 S와 동그라미 그리는 연습하며 멋진 주말을 보낸다.


헐커호건의 친구들은 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행여나 내가 시험에서 실수 할까봐 마음을 졸이며 응원을 해 주었고 성공적으로 끝내자 모두 예쁜 치어리더들 같이 펄쩍펄쩍 뛰며 하이파이브로 축하 해 주었다.




A군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자신의 오토바이를 기꺼이 타게 해 주었고 나는 멋질대로 멋진 주말을 보냈다. 오토바이, 구입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면허증을 따는 과정은 손에 꼽을 만큼 신선한 경험이었고, 면허증에 오토바이를 굴릴 수 있다는 글자 M 이 새겨지는 순간의 기분은 정말이지 꿀맛이다. 물론 세시간 기다려서 재발급 된 면허증의 새 사진 역시 말할 것도 없이 웃기지만. 

다른 저력인사의 오토바이 사랑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Icecreamarsenal.com
Song of the Sausage Creature 포스트를 추천한다.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떠나기 전에 면허증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우-우-우- 우우우우우-
몇년 전의 한 광고가 떠오른다. 사실 뉴욕 시내에서는 굳이 면허증이 필요없다. 지난 포스트 "자전거, 차가운 도시인의 필수 아이템"을 보면 자전거만으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그렇지만, 면허증이 있는데 운전을 안하는 것과 면허증이 없기 때문에 운전을 못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나도 좀 떠났으면 좋겠는데 면허증이 없다면? 친구랑 같이 가지 않고 혼자 가고 싶다면? 둘이 떠났는데 옆사람이 취했다면? 놀러 나갈 때 마다 작은 면허증 대신에 크나큰 여권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녀야 한다면?

미국에서 면허증은 운전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신분증의 개념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올 가을이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필기 시험은 이미 봐 놓은 상태여서 면허증 있는 사람이 동승할 경우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혼자서 운전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마다 아주 곤란했다. 어느 일반면허증을 가진 위인이 임시면허인과 어울리고 싶겠는가. 일반면허를 따기 위해선 주행 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역시나 일반면허가 있는 사람과 동승한 채 자신의 차를 가지고 시험장으로 가야하므로 일반면허증과 멀쩡한 차를 소유한 분을 섭외하여 시험 날짜를 잡는것이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첫번 째 시험은 미국내 범죄율 상위권을 자랑하는 Newark이라는 곳에서였다. 아닌게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불만과 증오가 가득한 듯한 인상의 시험관들은 그런 동네에서 일하는 것이 역겹다는 듯한 태도로 나를 불쾌히 맞아 주었고, 나는 마치 여덟시간 전에 방구석에 싸 놓은, 기억도 나지 않는 똥에 대해서 이틀 뒤에 엄청 혼나는 강아지가 된 듯한 기분으로 시험에 임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 시험관은 나를 불공평하게 시험에서 떨어뜨렸다. 한 성격하는 일반면허인인 내 친구조차 불공평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항의 해 봤자 남는게 없을 거라며 나를 위로했다.  시험관은 나와 시험장에 함께 가 준 너그러울 대로 너그러운 일반면허인 내 친구에게까지 무개념의 극치를 보여주며 나를 긴장시켰고, 나에게는 분명하지 않은 가이드를 하여 코스를 이탈 하도록 했다. 더럽고 치사한 이 세상. 언제부터 자동차 타고 다녔다고 그런 가짜 권력으로 나의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다니.

두번 째 시험은 특별히 가격이 오를 부동산을 고르는 투자자의 마음으로 선별한 Lodi라는 곳에서 보았다. 인구, 인종, 수입, 범죄율등을 고려 했을 때 차별을 당하지 않고 시험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얏바리! 친절한 시험관, 드넓고 쾌적한 시험장, 짧은 대기자 명단, 바삭바삭한 가을의 날씨까지 완벽한 환경속에서 나는 아주 손쉽게 시험을 통과했고 그 자리에서 면허증을 발급 받았다. 이 날 흔쾌히 함께 가 주신 일반면허인은 바로 닥터 손. 경쾌한 성격의 닥터 손은 침착하고 곱게 시험을 마무리 해 준 젊은 시험관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우리는 휘파람을 불며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 면허증 땄다고.



한국이나 미국이나 면허증 사진은 정말 못 봐 주겠다.
기념으로 다음주 중에 보스톤으로 하루 드라이브를 갔다 올까 생각 중이다. Oh YEAH.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and a New desk

PC방에서 카트라이더 혹은 디아블로 비슷한 게임을 해 보았다면 컴퓨터가 놓일 책상과 책상의 위치, 각 팀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최근 A군과 시작한 디아블로를 나란히 앉아서 열심히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디자인 의뢰를 문제 없이 소화하기 위한 데스크탑을 셋업 할 Work station이 필요했다. 한 번 만들어 볼까나. 그렇지만 지난번 벤치, 의자 샌딩의 악몽이 잊.잊.잊혀지지 않은 관계로 결정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여기 저기 알아보기는 했지만 사고 싶은 책상은 늘 비싸고, 구매 가능한 책상은 꼭 어디 한 군데가 맘에 안들기 마련이다.




역시나 이웃에 위치한 홈디포에 들러서 나무 구경을 잠시 한 뒤, 포플러 나무를 골랐다. 홈디포에 있는 가장 fancy한 나무가 포플러와 red oak이고 그 둘을 제외하면 단 한 종류 파인 뿐이다. 파인은 가격이 싸고 작업 하기가 용이한 대신에 나무가 물러서 웬만큼 두껍지 않은 이상 금방 휜다. 게다가 두꺼운 나무는 건축용이라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팔기 때문에 샌딩하는데 또 100년 정도를 까먹어야 한다는 두려움 아니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가격이 좀 비싸지만 오랫동안 이 책상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에 좀 더 단단하고 깔끔하게 샌딩이 되어 있는 포플러 낙찰.


 


집에 있는 가구들이 붉은 계열이 많아서 같은 분위기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기다란 베이스 위에 짧은 나무 토막들을 나열하고 세 가지의 스테인으로 패턴을 만들어 줄 작정!







꼼꼼하게 떡칠하지 않고 여러겹, 색을 섞기도 하면서 바르다 보면 나무가 점점 어두워지고 그 무게를 더하게 되는것이 꼭 사람같다. 칠이 마르면 두 다리와 몸을 잘 붙여주면 된다.













한 식구가 늘었다.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새 집, 새 계절

Long time no see!
드디어 이사가 끝났다. 짐 정리, 쓰레기 분리 수거, 필요한 물건 사기 등등을 마치는 동안 몇 번의 비가 내리고 가을이 되었다. 얼마 가지 않을 짧은 이 가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온도, 습도 모든게 완벽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하다. 새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는 것은 굉장한 기분의 전환이 된다.




가장 먼저 우리집의 자랑 창문! 남쪽으로 난 커다란 아치형의 창이 집 전체에 빛을 들여오고 이 집의 운치를 책임지는 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 앉아 있으면 등을 따끈따끈하게 데워 준다.


우리집의 명물 식탁! 창가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아서 그런지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 지난 번 집에서 현관 앞 열쇠 등을 넣는 용도로 쓰이던 콘솔이 와인 글라스나 주류, 카드 등의 보관용으로 둔갑, 식탁과 함께 쥐드래곤과 탑에 버금가는 환상의 콤비로 등극했다. 


공짜로 얻어온 바람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장. 지난 번 집에서는 그럭저럭 잘 사용했지만 개인적으로 쓸데 없는 물건들 진열하는 게 싫어서 제거 1순위에 올랐다. 책장 안의 모든 잡동사니들이 갈 곳을 찾게 되면 넌 이제 안녕!



소파가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집에 비해 덩치가 컸던 소파가 이 집에 오니 맞춰 입은 양복처럼 아주 아주 잘 어울린다. Good job, couch!


지난 번 플랜에서 보았듯이 침실은 들어오자 마자 바로 오른쪽으로 있다. 벽으로 나누어 져 있지 않아서 이불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하는게 관건!


입구에서 보이는 복도를 거쳐 보이는 거실. 복도의 왼쪽으로는 화장실, 오른쪽으로는 부엌이 자리잡고 있다.


부엌 바로 옆의 빈 공간엔 나의 애물단지인 파랑색 의자가 우아하게 자리 잡았다. 그 동안 즐길 수 없었던 의자의 직각이 확연하게 살아났다. 


창문으로 내다 보면 보이는 길 건너의 레스토랑, Hamilton Inn. 가깝다 보니 주변의 친구들과 자주 찾게 된다. 생굴과 기네스는 우리의 단골 메뉴. 미식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바에서 드래프트를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참, 옥상이 있었지. 옥상은 우리의 가을을 살 찌워 줄 키 포인트임이 분명하다. 건물에 사는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이 귀여운 옥상은 맨하탄, 자유의 여신상, Freedom tower에 이르는 뷰를 자랑하며 또한 고기를 구워 먹으며 햇볕을 즐길 수 있다. 이미 두 팀이나 와서 한바탕 구워 먹고 놀았다.



이것은 퍼온 사진으로 건물의 외관을 보여 준다. 창문의 모양을 보면 우리집이 4층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 할 수 있겠다. 



그 외에도 해밀튼 공원이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산책하며 거닐기에 딱이다.
올 가을은 어떤 신나는 일들이 펼쳐질지 심히 기대가 되는 바이다.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여름의 끝을 잡고



더웠던 여름이 가고 있다. 여름은 내가 겨울보다 선호하는 계절인데 그 이유는 내가 더위를 덜 타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스크림과 공포 영화, 바닷가, 수영장, 바베큐 등 좋아 할 만한 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7월의 따가운 볕은 이제 갔다. 물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이 오고 있다는 뜻이기는 하지만 뭔가 섭섭한 것이 마치 노래방에서 마지막 곡을 다 못 끝내고 그냥 떠밀려 나오는 기분이랄까. 어제 소피아를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보니 공포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엔 동생과 공포 영화 마스터하기에 한 참 열을 올렸던 기억도 나고. 뭔가 무서운 것에 끌리는 그런 요즘이다.

무서운 영화에도 종류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그럴싸 한 영화는 주로 성경, 악마 등 보이지 않는 힘에 관한 것들이다. 클라식 중에서 굳이 꼽으라면 1970년대의 엑소시즘과 오멘 정도를 고르겠다. 이유 없이 찌르고 죽이고 깜짝 놀래켜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종류는 대상에서 제외이다. 예로는 스크림, 난 니가 지난 여름에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다, 링 등 특히 일본 영화를 비롯한 수도 없이 많은 영화들이 있고 걔들이 나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해를 끼쳤다. 아무튼 뉴욕에서도 소리소문 없이 많은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올 여름 최강 공포 영화는 바로 Paranormal activity3이다.

그 전 두 편을 보았다면 대충 어떤 레파토리를 펼칠 것인지는 짐작하겠지만 그래도 무섭다 이 영화. 피가 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죽는 것도 아닌데,  음향과 캠코더로 찍은 듯한 그 영상만으로 보는 이의 숨을 죽인다. 영화 속 저주받은 이 가족에게는 3편에 걸쳐 대대로 악마가 쫓아 다니며 괴롭힌다. 보이지 않는 이 주인공은 가족 중의 한 사람을 꾀어 나쁜 짓을 저지르거나 가족들을 겁주는 일을 주로 하는데 그 방법이 아주 섬세하지만 동시에 아주 직선적이다. 집 안에 누가 들어온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도 켜지 않고 온 집안을 누비다가 살해되는 멍청한 주인공의 죽음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강추!



무서원 영화 하니까 생각나는 나의 경험. 실화이다.
나는 부산의 ㄷ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초가을 즈음이었고 학교 전체는 운동회 준비로 바빴다. 어느 날 나와 같은 학년의 한 소녀가 운동장에서 오래 달리기 연습을 하던 중 체육복을 입은 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나는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후로 화장실에서 그 아이를 보았다는 둥 온갖 소문이 들을 때 마다 공포에 휩싸였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홍콩할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무섭고 강력한 것이었다. 소문도 곧 잠잠해 지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 해 다시 초가을 즈음. 우리반은 곧 다가올 무용 수업 실기 시험을 준비 하는 중이었다. 여섯 명이 같은 조였기 때문에 연습 할 스케줄을 맞추는 것이 여간 힘든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험 바로 전 날 벼락 연습을 하게 되는 바람에 우리는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다. 각 교실마다 아이들이 연습을 하는 바람에 해는 이미 지고 깜깜해 졌지만 그 한 층은 꽤나 시끄러웠다. 아홉시가 넘었을 때 아이들이 하나 둘 돌아가고, 경비 아저씨가 우리를 찾아와서 그만 집으로 가라고 했다. 나와 내 짝은 교실 문을 잠그고 천천히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바로 옆 교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는 앞문의 유리창으로 교실 안을 들여다 보았다. 우리가 본 건 어떤 여자 아이의 뒷모습이었다. 그 여학생은 체육복을 입고 교실 뒤 쪽을 바라보며 책상에 걸터 앉아 있었다. 마치 나머지 아이들은 바닥에 앉아 있고 그 아이만 책상 위에 앉아있는 듯한 장면이었다.

-뭐야 얘네는 아직도 연습하는데 우리만 가라고 하네. .

-아저씨 뭐야 진짜

어쨌거나 시간도 늦었고 더 이상 연습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지나오는데, 교실 문이 잠겼나 확인하고 우리를 뒤따라 오던 경비 아저씨가 옆 교실의 불을 껐다. 그러나 그 교실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 거기 애들 있는데

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 내 짝과 나의 머릿속은 동시에 하얘졌다. 우리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복도를 달리고 네 층의 걔단을 뛰어서 소리를 꽥꽥 지르며 학교에서 나왔지만 그 날 밤은 너무너무 무섭고 길었다. 그 교실은 바로 작년의 달리기 연습을 하던 그 소녀가 죽기 전까지 있었던 곳이었다.

2012년 8월 22일 수요일

무난하게 묻어가는 것과 잘 어울리는 것의 차이

우리집의 자랑 재활용 살나무 식탁, 즐거운 벤치와 더불어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완성 시켜줄 의자 한 쌍이 필요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의자가 있긴 하지만 딱히 맘에 들지 않아서 고민 중이었다. 맘에 드는 의자로 골라서 산 것이 아니라 얻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구를 산다는 것은 매우 골치가 아픈 일임이 틀림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앉아서 밥 먹으면 됐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했지만, 뭔가 생뚱맞은 의자의 색깔을 볼 때마다 정말 이건 아니잖아 하는 생각에 답답했었다. 이 두 의자는 학교 교실에 갖다 놓으면 그냥 무난하게 묻어가는 스타일로 교실에서 나온 뒤 누구에게라도 물어보면 의자가 있었어 거기? 하며 정색을 할 만큼 특징이 없는 그저 그런 의자이다.

굉장히 무난한 의자
나는 미지근한 것이 싫다. 무난한 건 나쁘다. 특징 없이 아무데나 묻어 가는 스타일은 결국 마지막에 소유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의자를 어떻게 할까 생각 할 때 들어있는 옵션들 중 하나가 "버리자" 라는 것인데 그건 이 의자가 여기에 있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의자를 새롭게 단장시켜 주기로 한다. 잘나가는 나의 식탁과 BFF (베스트 프랜드 포에버)가 되어 보는거야! 

사람이든 가구이든 옷을 어울리게 잘 입으면 어느 정도는 체형적 결점을 보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현재 나의 두 의자는 70년대 만화방에서 정신없이 놀다가 해질녘 쾌쾌한 냄새가 절은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온 쌍둥이 같다. 용납할 수 없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일은 이 둘을 목욕탕에 데려가 때를 박박 미는 것이다. 영화 My fair lady, Pretty woman을 보면 일단 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샌딩은 절대로 실내에서 하지 말자 라고 결심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작은 뒷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갈 때 까지는 일단 집 안에서 해야 한다. 그래서 택한 최적의 장소는 바로 화장실! 공간이 작아서 청소가 비교적 용이하다. 샌딩머신 준비. 의자의 전신을 꼼꼼하게 한 꺼풀 벗겨낸다 생각하면 된다. 샌드 페이퍼는 80-200정도면 제법 곱게 다듬을 수 있다.








시작 할 때 등받이 부분만 살짝만 벗겨 내었는데도 벌써 느낌이 확 틀려졌다. 샌딩이 끝나면 페이퍼 타월에 물을 적셔서 의자 전체를 닦아 내면 된다. 게다가 화장실에서 샌딩을 하니 톱밥파티의 규모는 기하학적으로 감소했다. 원래 엉덩이 받이는 샌딩 전에 분리를 했어야 옳은 순서가 되겠지만 워낙 의자의 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마음이 급한 나머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날씨가 좋다면 바깥으로 의자를 가지고 나가자. 때를 밀었으면 쇼핑을 가는게 순서니까. 그야말로 어정쩡한 회색의 프레임 대신에 아주 깔끔한 검은색 프레임을 만들 작정이었다. 스프레이 한 병이 있으면 두 의자의 프레임을 딱 맞게 칠할 수 있다. 주의 할 점은 절대 스프레이로 떡칠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30센치 이상 떨어져서 가볍게 한 겹 칠하고, 좀 있다가 또 한 겹 칠하고.  참을성이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이 방법은 자전거 프레임과 오토바이 헬멧을 리폼 할 때에도 쓰인다.





프레임 전체가 검은색으로 바뀐 순간 나의 표정은 탈의실에서 꼭 맞게 어울리는 옷을 입고 나온 쥴리아 로버츠를 바라보는 리챠드 기어와 같았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하늘색 아크릴 물감으로 의자 등받이 위에 이름을 적었더니 뉴욕의 봄처녀처럼 아주 산뜻하다. 나무 부분은 나중에 어떤 색깔로 또 바꿀지 몰라서 일단은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나두었다. 변신 성공!